‘화수분 터’ 팔아 삼성그룹 위기 자초했나

태평로 삼성생명 빌딩 인근 조선시대 엽전 만들던 주전소매각 후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 갤노트7 폭발, 최순실 게이트 잇달아
이수룡 기자 2020-05-21 20:09:02

 

삼성그룹이 위기다. 지난해까지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이 착착 이뤄졌지만 올해 들어서 잇단 악재가 터지면서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삼성의 위기 원인은 다양하다. 스피드를 추구하는 삼성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와 오너리스크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각에서는 좋은 사옥 터를 매각하면서부터 오너일가와 삼성이 온갖 추문에 휩싸이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는 해석도 내 놓는다.

먼저 오너 리스크 설. 이재용 부회장이 ‘대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이 필수적이었다. 세계 일류 기업인 삼성전자를 지배하지 않고는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힘이 달렸다. 미국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시민단체 등이 강력 반대했다. 국민연금이 ‘백기사’로 등장하며 통합이 가까스로 가결되면서 화룡점정을 찍는 듯 했다.

구조조정도 동원됐다. 이재용 부회장이 그룹 승계를 위해 엄청난 ‘실탄’이 필요했지만 부족했다. 삼성은 2014년 11월26일 석유화학부문인 삼성종합화학·삼성토탈과 방위산업부문인 삼성테크윈·삼성탈레스를 한화그룹에 넘기면서 위기를 돌파했다. 여기서 손에 쥔 돈이 1조9000여억원에 달했다.

당시에는 왜 수천억원의 손실이 예상되는데도 국민연금이 삼성 편을 드는 이유를 알지 못했다. 삼성과 한화의 빅딜도 시장지배력과 방산업체 매각 등으로 정부의 승인이 필요했지만, 이마져도 3개월 만에 뚝딱 처리돼 의혹이 일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고서야 외압의 실체가 드러나고, 여기에 최순실의 실루엣도 비쳤다. 전문가들은 이재용 부회장의 무리한 승계가 그룹의 위기를 자초했다고 지적하지만 삼성은 부인하고 있다.

삼성의 강점으로 꼽히던 ‘패스트 팔로워(fast-follower)’ 전략도 위기를 자초했다는 평가다. 전자산업에 늦게 뛰어든 삼성은 변방중의 변방이었다. 초기 선풍기나 전자밥솥을 만들면서도 지금의 LG전자인 금성사에 밀렸다. 이를 깨부순 것이 ‘패스트 팔로워’ 전략이다. 쉽게 말해 최대한 빨리 ‘1등 베끼기’ 또는 ‘따라 하기’다.

전자제품으로 전 세계를 지배한 소니가 영화와 음반, 게임 등으로 딴눈을 판 사이 삼성은 오직 전자에 몰두했다. 1980년에 반도체 생산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어 87년까지 누적적자가 1400억원에 달할 정도로 그룹이 휘청거렸지만 밀어 부쳤다. TV와 비디오 등 가전제품에서 소니를 제낀데 이어 치킨게임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반도체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세계에 우뚝섰다.

스마트폰에서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삼성전자는 ‘옴니아’를 출시해 초기 시장 신뢰도를 잃었지만 2009년 애플의 아이폰2 국내 상륙에 자극받아 맹추격에 나섰다. 애플과 삼성의 특허전쟁으로 비화됐지만 삼성은 결국 2012년 애플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라섰다.

그러나 1등이 됐다는 희열도 잠시, 바로 경보음이 들렸다. 선두에 서고 보니 모든 것을 개척해야 했기 때문에 삼성 내부에서 혼란이 왔다는 전언이다. 대표적인 것이 출시 두 달도 안 돼 4조원이상을 날린 삼성 갤럭시노트7 폭발 사태다.

◆’화수분 터’ 태평로 삼성타운. 18세기 중반 제작된 ‘도성대지도(都城大地道)’에는 현재 삼성본관 인근 터가 선혜청의 별도 창고로 표시되어 있다. 조선 고종 때 이곳에서 화폐를 주조했다. 삼성그룹이 삼성화재 빌딩 매각 후 위기가 잇따르면서 ‘화수분’같은 좋은 터를 버렸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삼성의 위기를 풍수지리에서 찾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삼성의 위기를 풍수지리에서 찾기도 한다. 이병철 선대 회장은 태평로 삼성본관과 호텔신라, 에버랜드, 심지어 공장 터 등을 잡을 때 지관의 자문을 구할 정도로 풍수지리를 신봉했다.

하지만 손자인 이재용 회장은 이를 믿지 않는 듯하다. 할아버지가 심혈을 기울여 땅을 사고 건물을 올렸지만 ‘공간 재배치’ 명목으로 모두 팔 계획이다. 매각 리스트에 삼성본관 빌딩과 바로 옆인 삼성물산 빌딩, 서소문동 중앙일보 사옥 등이 올랐다. 삼성생명 빌딩은 올해 1월 5800억원에, 삼성화재 빌딩은 8월 4300여억원에 모두 부영에 팔렸다.

삼성본관 등이 자리 잡은 태평로는 길지(吉地)로 알려져 있다. 조용헌 박사는 ‘삼성생명 빌딩은 조선 후기에 동전을 주조하던 주전소(鑄錢所) 터에 세운 빌딩이었다고 한다. 과거에 그 터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가는 감여가(堪輿家)에서 주목하는 정보(2016년1월18일 조선일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18세기 중반 제작된 ‘도성대지도(都城大地道)’에는 현재 삼성본관 인근 터가 선혜청의 별도 창고로 표시되어 있다. 창고의 크기가 매우 큰 것은 선혜청이 빈민구제 기관이라 곡식 등을 많이 쌓아 놓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선혜청은 단순히 빈민구제만 한 것이 아닌 화폐를 주조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고종19년(1882년) 9월1일 ‘선혜청별창(別倉)에 주전소를 설치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주전소는 지금의 한국은행이나 한국조폐공사와 같다고 보면 된다. 이런 화수분 같은 터를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이전하는 삼성그룹에 구설수가 잇따르고 화가 미치는 것을 과연 미신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삼성생명 빌딩을 매각한 올해 유독 삼성그룹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 이건희 회장 성매매 동영상 공개 후 숨 돌릴 틈도 없이 ‘노트7 폭발 사건’에 이어 ‘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그룹의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 등이 2번이나 압수수색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어쩌면 이 사건으로 이재용 부회장이 처음으로 검찰 수사를 받을지도 모른다. 승계 작업도 꼬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삼성그룹은 최대 위기에 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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