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기(陰氣) 센 중앙일보 건물 누가 품을까?

선시대 처형장 인근…중앙, 삼성 기대저버리고 매입 난색
이수룡 기자 2020-05-21 22:11:57

 

◆TBC는 언론통폐합으로 1980년 11월30일 마지막 방송을 하면서 “TBC는 영원하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이 사람아, 공부해 : 유민 홍진기 이야기>

호암 이병철에게 TBC(동양방송)는 생살을 도려낸 아픔이었다. 이병철은 5·16쿠데타가 나자 부정축재자로 몰리는 수모를 겪으면서 정치 입문을 꿈꿨다. 하지만 1년간 고민 끝에 포기하고 대신 종합매스컴센터 설립을 추진한다. 박정희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이병철은 1964년 5월과 12월 라디오서울과 TBC를 개국한 뒤 1965년 3월 중앙일보를 창간하며 종합미디어그룹을 완성했다. 이병철은 4·19혁명 당시 발포 책임으로 옥고를 치른 홍진기 전 법무부장관(홍라희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아버지)을 영입해 언론을 맡겼다.

TBC는 드라마와 쇼 등이 인기몰이를 하면서 1970년대 최고 방송국으로 성장했다. 이 여세를 몰아 이병철은 1977년 여의도에 8000평의 부지를 마련해 TBC 사옥을 착공, 1980년 4월14일 개관식을 성대히 열었다. 하지만 12·12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는 언론통폐합을 강행하면서 TBC는 KBS에 통폐합됐다.

마지막 방송이 있던 1980년 11월30일 이병철은 TBC 사옥 벽을 쓰다듬으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호암 이병철은 TBC 사옥을 빼앗긴지 불과 1년 반 만인 1982년 3월11일 중구 서소문동에서 홍진기 중앙일보 회장과 이건희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일보 신사옥 기공식을 열었다. <이 사람아, 공부해 : 유민 홍진기 이야기>

이병철은 절치부심했다. TBC 사옥을 빼앗긴지 불과 1년 반 만인 1982년 3월11일 중구 서소문동에서 자신과 홍진기 회장, 이건희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중앙일보 신사옥 기공을 열었다. 중앙일보 빌딩은 애초 지상 18층, 지하 3층 규모였지만 호암아트홀과 호암갤러리를 추가하고 높이도 21층으로 올려 중앙일보 창간 20주년에 맞추어 1985년에 완공했다.

이병철이 얼마나 방송에 애착을 보였는지는 중앙일보 사옥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건물은 신문사보다는 방송국에 적합하도록 설계됐다. 이병철은 언젠가 다시 방송국을 개국할 것에 대비해 중앙일보 사옥의 층고를 조명기구 등을 달수 있도록 높게 했고, 호암아트홀은 공개방송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조선시대 소의문(昭義門) 밖은 죄인을 처형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신유-병인박해 당시 100여명의 천주교인이 순교했다. <성 베네딕도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소장 서울사진>

하지만 터가 문제였다. 중앙일보 자리는 조선시대 죄인을 처형하고, 시체 등을 도성 밖으로 내보내는 소의문(昭義門) 주변이라 사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실제로 중앙일보 코앞인 서소문공원은 태종 16년(1416년) 처형장으로 지정된 뒤 신유박해(1801년)와 병인박해(1866년) 당시 황사영 등 100여명의 천주교인이 처형돼 천주교 성지로 지정됐다.

이곳에서 망나니 칼날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처형되면서, 음기가 센 터라고 구전(口傳)되고 있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중앙일보의 입주 후 이런저런 사고가 끊이지 않다가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제사를 지낸 뒤에야 불행한 일들이 멈췄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삼성그룹이 올해 중앙일보 사옥도 매각을 결정하면서 누가 주인이 될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은 그룹에서 떨어져 나갔지만 건물의 상징성을 고려해 중앙일보 측에서 매입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직원조차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중앙일보 21층에는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의 집무실뿐 아니라 창업자인 이병철과 홍 회장의 아버지인 홍진기 회장 그리고 이건희 회장의 집무실이 박물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매입에 난색이다. 홍 회장은 중앙일보 건물에 애착이 있지만 아들인 홍정도 사장은 방송에 최적화된 상암동 JTBC빌딩이 있는데 굳이 오래된 건물을 소유할 필요가 있느냐고 회의적인 입장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앙일보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중앙일보 빌딩을 매물로 내 놓았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경영층에서) 확인이 안 된다”며 말했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