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미안, ‘삼성쉐르빌’처럼 간판 내리나?

3년새 2500명 감원…영업 위축으로 3~4년후 분양 못할 수도
이경아 기자 2020-05-21 23:06:36

 

'래미안에 삽니다’

여심(女心)을 이토록 흔들어 놓은 광고 카피는 없었다. 세상은 래미안에 살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아파트값도 수천만원씩 차이가 나면서 래미안에 사는 자체만으로 ‘남보다 잘 살다’는 평가를 받았다.

삼성의 감성적인 ‘소프트 파워’가 아파트에 녹아들면서 래미안에 사는 것이 일반 사람들의 꿈이 됐고, 이를 반영하듯 광고 카피는 ‘살아 보고 싶은 아파트’에서 ‘다시 살아도 래미안입니다’로 진화를 거듭했다. 이렇다 보니 래미안은 여자들의 로망, 그 자체가 됐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성공은 래미안에서 시작됐다. 삼성은 2000년 건설업계 처음으로 래미안을 론칭하면서 본격적인 아파트 브랜드 시대를 열었다. 삼성은 주택경기와 상관없이 매년 1만가구의 래미안을 공급하며 ‘국가고객만족도지수(NCSI)’ 19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래미안이 퇴출 위기를 맞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건설 부문이 수익성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담합 등으로 ‘사고만 친다’며 매각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에는 KCC건설 등 구체적인 인수업체 명단이 나돌기도 했다.

그렇지만 매각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이 지을 때 래미안이란 브랜드 가치가 있는 것이지 다른 건설사가 이를 사간다해도 소비자들이 외면할 것이란 평가 때문이다.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래미안은 삼성중공업 주택부문 브랜드인 ‘삼성쉐르빌’의 전철을 밟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가 덮치면서 주택경기가 침체기에 접어들자 삼성중공업은 3단계로 건설부문 정리에 나섰다.

먼저 영업부분을 축소하고 관리부서 사원을 영업부로 배치해 적응하지 못하는 이탈자는 명예퇴직 형태로 정리했다. 2단계로 미수채권 회수에 들어간데 이어 A/S조직 단계별 축소 등으로 구조조정을 마쳤다. 실제로 직원 수가 700여명에서 현재 130명으로 급감했고, 건설부문은 부사장 체제였지만 현재 상무가 토건팀을 맡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11년 오피스텔인 강남역쉐르빌(300실)을 끝으로 주택사업을 접었다.

삼성물산은 2014년부터 건설부문 저성과자와 기혼여성 등에게 권고사직 형태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하지만 감원규모가 예상에 못 미치자 지난해 3월과 6월 희망퇴직을 단행했다. 9월에는 한달간 휴직후 퇴사나 복직을 결정할 수 있는 ‘리프레쉬(Refresh)휴직제’를 도입했다.

한 퇴직자는 “권고사직 때는 일 잘하는 ‘필수요원’은 예외라는 인식이 있었지만 희망퇴직을 도입하면서 누구나 신청할 수 있어 ‘에이스’들이 대거 회사를 떠났다”며 “리프레쉬 휴직제를 쓰고 출근하면 책상이 없어져 사실상 강제퇴직이나 마찬가지”라고 꼬집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해 3월 삼성서초타운을 떠나 판교 알파리움 1‧2동에 둥지를 틀었다. 하지만 최대 8000명에 달하던 인원이 현재 5500명 남짓으로 줄면서 현재 2동만 사옥으로 쓰고 있지만, 이 마저도 빈자리가 계속 늘고 있다.

영업도 위축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도 한해 최소 5~6건의 ‘돈 되는’ 수도권 재개발‧재건축 단지를 수주했지만 지난해에는 한건도 못했다. 분양물량도 지난해 9개 단지 1만187가구에서 올해 6개 단지 9017구로 줄었다.

현재 삼성물산 빌딩사업부는 10조원가량의 건설물량을 확보하고 있지만 매년 2조원어치 주택을 공급하는 상황에서 3~4년이면 물량소진으로 래미안이 없어질 것이란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심지어는 수주한 물량도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타절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의 한 관계자는 “위에 물어보니 주택시장 철수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한다”며 “그러나 그룹이 어떤 결정을 했는지는 모른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현재 삼성은 특검의 이재용 부회장 수사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라 래미안 퇴출은 먼나라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조직을 축소하고 영업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조만간 래미안의 위기가 찾아올 때 이재용 부회장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댓글

(0)
※ 댓글 작성시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책임을 담아 깨끗한 댓글 환경에 동참에 주세요. 0 / 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