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 사옥 터는 ‘원심력’ 강한 곳?

이수룡 기자 2020-05-21 23:26:00

박삼구 회장, ‘순위’ 경쟁으로 무리한 M&A‧‧‧몰락 자초
기(氣) 샌 사옥에 입주 후 유동성 위기에 ‘왕자의 난’까지

재벌들은 숫자에 민감하다. 숫자는 돈이고 서열인 탓이다. 나이가 많더라도 돈이 적으면 의전 순위에서 밀린다. 지금이야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지만 젊은 이재용 부회장이 재벌가 모임에서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이유다. 이러니 기를 쓰고 돈을 벌려고 하고, 덩치를 키우기 위해 인수합병(M&A)에 몰두한다.

물류 재벌인 금호아시아나그룹(옛 금호그룹)과 한진그룹은 영원한 라이벌이다. 창업시점도 비슷해 금호아시아나그룹은 1946년 광주택시를 모태로 하고, 한진그룹은 1945년 인천에서 시작한 한진상사가 기반이 됐다. 한진은 1969년 3월 국영인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하면서 앞서 나갔다.

절치부심하던 금호는 1988년 제2민항인 아시아나항공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재산총액이 적어 재벌 순위에서 한진에 항상 밀렸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지정 자료(공기업 포함)를 보면 한진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재계 10위 안에 항상 들었지만 금호는 2001년 9위를 끝으로 2002년 14위, 2003년 17위, 2004년 15위에 지나지 않았다.

박삼구 회장은 2006년 그룹 회장직에 오르면서 대우건설 인수로 대변혁을 시도했다. 재계 순위가 18위(한진 12위)에서 2007년 단숨에 13위로 뛰어 오르며 한진(14위)을 제쳤다. 이어 대한통운 인수에 나서면서 입지를 다졌다.

박 회장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은 건물 높이에서도 드러났다. 인수 무렵 대우건설은 금호아시아나그룹사옥(현 대우건설 사옥) 건너편에 건물을 짓고 있었는데, 박 회장은 바로 옆 건물인 흥국생명빌딩보다 1㎝라도 높게 지으라고 엄명을 내렸다고 한다. 실무자들은 화들짝 놀라 건물 높이를 헬기장까지 119.5m로 건설하며 층수도 27층으로 정했다. 흥국생명빌딩은 지상 24층에 123m라고 알려졌지만 피뢰침을 제외하면 115m정도다. 흥국생명빌딩보다 ‘약간’ 높게 지어진 빌딩은 현재 금호아시아나본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승승장구하던 금호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후 세계 경기 침체로 유동성 위기에 처면서 급속도록 추락했다. M&A한 대우건설과 대한통운 뿐 아니라 알짜인 금호렌터카와 금호생명, 서울고속버스터미널 최대 보유 지분, 인천종합터미널 부지 등을 잇달아 매각했다. 2016년 4월 기준 기업 순위도 한진(15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이며, 부영(21위)에도 밀려 28위로 쪼그라들었다.

일각에서는 금호아시아나의 추락을 사옥 터에서 찾는다. 호사가들은 현재 그룹 사옥 터는 대우건설 사옥(옛 그룹 사옥) 터보다 못한데, 박 회장이 그룹 사옥을 바꾸면서 우환이 시작됐다고 쑥덕이고 있다. 우백호(인왕산) 자락인 대우건설 사옥은 조선시대 훈련도감 터인데, 임진왜란 중에는 포수(砲手), 사수(射手), 살수(殺手) 등을 양성했던 곳으로 알려졌다.

금호아시아나는 그룹 사옥 터의 약점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금호아시아나는 2008년 9월22일 사옥에 입주 후 흥국생명과 기(氣)를 두고 갈등을 벌였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은 신문로 사옥을 신축하면서 미국의 미술가인 조나단 보로프스키(Jonathan Borofsky)의 해머링 맨(Hamering Man·망치질 하는 사람)을 2002년 6월 설치했는데, 금호아시아나는 이 해머링 맨이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1분에 한번씩 망치질을 하면서 우백호에서 오는 기를 빼앗는다고 흥국생명에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호아시아나는 비보(裨補)를 세웠다. 즉 빼앗긴 기(氣)를 물의 힘으로 가져 오기 위해 건물 옆에 벽을 세우고 물을 흐르게 하는 수벽(水壁)을 세웠다.

하지만 그룹의 와해를 막지는 못했다. 사옥 입주 후 유동성 위기가 터지면서 M&A 물건을 다시 시장에 내 놓아야 했고, ‘왕자의 난’이 벌어지면서 박 회장의 동생인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은 ‘딴살림’을 차려 나갔다. 더욱이 박 회장은 그룹 재건에 필수적인 금호타이어 인수를 강력히 바라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인다.

금호아시아나그룹 터는 기운을 모으는 구심력이 아닌 모든 것을 흩트리는 원심력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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