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이어온 선분양제도 폐기될까

재정 취약해 대규모 건설자금 없는 정부 선분양 도입부실시공, 건설사 부도 등 문제 잇따르면 개선 목소리후분양으로 집값 잡겠다지만 공급축소로 되레 상승할 수도
이경아 기자 2020-05-22 00:02:38

 

아파트값이 치솟으면서 정부의 대책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주택 후분양제도 도입이 단계적으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부터 먼저 집을 짓고 나중에 분양하게 한 뒤 민간부문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정부가 현재 ‘선분양 후시공’ 방식에서 ‘선시공 후분양’으로 정책을 전환하는 데는 분양권 전매 투기로 인한 집값 불안 행태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 표명입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정책의 성공보다는 주택공급 축소로 집값이 오히려 치솟지 않을까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선분양제도는 도시 서민들의 주거해결을 위해 1984년 11월 본격적으로 도입됐습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산업화를 이루며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룹니다만 사람들이 도시로 몰리면서 상하수도, 전기, 주택 등 다양한 문제들이 쏟아집니다. 농촌 총각과 처녀들이 무작정 일거리를 찾아 서울로 몰려든 탓입니다. 실제로 통계청 자료를 보면 서울인구는 1960년 244만여명에서 1970년 552만여명, 1980년 835만여명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합니다.

인구 증가로 파생된 여러 가지 문제는 단연 주택 부족에서 기인합니다. 일거리를 찾아 서울로 몰린 사람들은 도시빈민으로 전락하면서 공원이나 하천변, 산기슭 등에 무단으로 판자촌을 짓고 살았습니다. 이런 대표적인 곳이 금호동과 신림동 등지의 ‘달동네’와 청계천 판자촌이었습니다.

정부는 도시미관(美觀)을 해친다거나 무작정 상경(上京)을 막고, 도시계획 등의 이유로 무허가 주택을 철거에 나섭니다. 철거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나고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무허가주택 양성화에도 나섭니다.

인구가 서울에 집중하면서 주택가격이 치솟으면서 강남개발이 본격화됩니다. 이 과정에서 재정이 튼튼하지 못한 정부는 단시간 내에 주택을 대량 공급할 수 있는 선분양 제도를 도입합니다. 이 제도는 더욱이 민간 건설사 입장에서는 비용을 거의 들이지 않고 사업을 할 수 있는 매력적인 사업입니다. 즉 건설사는 용지매입 비용만 있으면 주택구입자들이 낸 계약금과 중도금으로 공사비를 손쉽게 충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분양제도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투기광풍을 일으킵니다. 돈 있는 사람들이 분양권을 산 뒤 되팔면서 엄청난 시세차익을 거두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됩니다.

또한 소비자들이 모델하우스만 보고 집을 계약한 뒤 2~3년 후 준공된 집의 부실시공과 건설사 부도로 인한 피해 등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제도 개선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매일경제는 1995년 10월5일자에 ‘건설교통위의 대한주택공사 국감에서 부실시공방지와 주택정책에 관한 정책대안을 제시해 눈길…유성환(민자) 의원도 선분양제도에 대한 인식의 대전환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 뒤 시공회사의 부도 피해가 무주택자에게까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다른 공산품과 마찬가지로 후분양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노무현 정부는 선분양제의 문제점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2007년 공공부문부터 후분양제를 의무화할 예정이었지만 세계 금융위기로 연기했습니다. 결국 이 제도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폐기됐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뛰는 집값을 잡기 위해 후분양제도 도입 카드를 꺼냈습니다. 그러나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나 리츠(부동산뮤추얼펀드) 등 국내 부동산 금융이 취약하고 건설사들도 대규모 아파트 건설 자금을 자체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이를 전면 도입한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입니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후분양은 건설사의 금융부담이 커져 집값이 내려가는 것이 아닌 오히려 상승한다”며 “단기간에 분양대금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서민에게도 불리한 제도”라며 말했습니다.

정부는 공공부문에서 먼저 후분양제도를 시행한다지만 주택공급 80%정도를 담당하고 있는 민간 건설사들이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사진 : 픽사베이 Sebastian Wag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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